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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페란토’로 항일을 노래하다
LEE Jungkee  (Homepage) 2012-11-09 09:29:33, Hit : 1,947, Rec. : 406

2011/11/29 22:52 신문잡지 기고글/한겨레21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우생의 창작 · 번역물 40편 유럽 도서관에서 최초 발굴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ds@chojus.com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총독을 암살해 일본의 불법 침략을 세계에 알린 안중근 의사의 구국 결의는 그의 아우와 조카 등 일가에 의해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다. 막내동생 안공근은 안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교사 생활을 접고, 형 안정근과 함께 연해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는 1921년 임시정부의 외무차장으로 임명되었고, 그해 10월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폈다. 1925년 상하이로 돌아와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의열 투쟁을 벌인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의사 등을 배출한 한인애국단의 단장도 맡았다. 그는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6개 국어에 통했다. 김구 선생의 영문편지를 대신 써주었으며, 김구 선생과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만날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문학잡지 〈Literatura Mondo〉의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

김구 선생 대외담당 비서로 활약

안우생(1907~91)은 바로 이 안공근의 장남이다. 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인 인성학교를 거쳐 중국 베이징 복건대학과 광둥 중산대학에서 수학했다. 1936년 한국 국민당이 조직한 한국청년전위단의 핵심 단원이 되었고, 광복군 내 정보 분야에 활동했다.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비서, 선전부 선전과장, 문화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주중 미 대사관에서 한인공작반의 일원으로 첩보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해방 뒤 귀국해서 김구 선생의 대외담당비서로 일했고, 한중문화협회 이사와 과도입법의원 영문비서 등도 역임했다. 국내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때, 그는 일체의 외국 군대를 철수시키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남북의 제휴와 합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던 임정 계열의 인사들도 안우생 등의 설득에 힘입어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 6개 국어에 능통했던 항일운동가 안우생은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로 문학작품 활동을 하면서 애국정신과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북한에 있는 안우생 무덤.(사진/ 한겨레)

그 뒤 안우생은 남북연석회의의 실패와 김구 선생의 피살 등으로 홍콩으로 망명했다거나, 한국전쟁 초기에 월북 혹은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북한이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함께 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그의 소식을 팔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우생은 아버지와 함께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이 주도하는 역사 형성이 좌절되면서 안우생은 생소한 사람으로 남았고,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루쉰의 작품 네편을 에스페란토로 탁월하게 번역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사>에서 그는 ‘엘핀’(Elpin)이라는 필명으로 중국의 대표적 애국문학가인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 ‘고향’ ‘백광’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고, 중국인 다섯명이 번역한 다른 소설과 함께 1939년 홍콩에서 <루쉰문선>(Elektitaj Noveloj de Lusin)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안우생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최초 소설인 ‘광인일기’를 번역했고, 그가 번역한 소설 세편이 책의 4분의 1을 차지한 것 등에서 그의 에스페란토 실력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안우생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러 언어를 구사했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에스페란토 등 6개 국어에 능통했다. 상하이에서 1927년께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페란토 운동과 항일투쟁을 함께 한 중국의 원로 첸유안 교수(중국 국가언어위원회 부위원장)는 “안우생은 시를 사랑했고 아름다운 시구를 지었다. 중산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에스페란토 시 강의를 하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첸 교수는 또 잡지 발간을 함께 추진했는데, 안우생이 전쟁문학작품을 주로 싣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두 종류의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단다. 그는 “나의 에스페란토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은 애국문학가 안우생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술회했다. 이로써 안우생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백범일지>에 따르면 조부 안태훈은 시문에 능했다고 하니 손자가 조부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루쉰 소설을 번역한 세 작품 외에도 다른 역작이나 원작이 분명히 더 있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섰다.


△ 안우생의 문학작품의 보고로 1938-39년 홍콩에서 발간된 문학잡지 〈Orinta Kuriero〉(오른쪽)와 루쉰의 작품을 탁월하게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는 평을 받는 〈Noveloj de Lusin〉(베이징, 1963).

김동인 · 유치진 등의 작품도 번역소개

1991년 필자가 헝가리 엘테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부다페스트에 있는 ‘칼롤리 파이시 에스페란토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수집가 파이시의 도움을 받아 1938~39년 홍콩에서 발간된 <원동사자>(遠東使者·Orienta Kuriero)라는 잡지를 찾았다. 안우생이 이 간행물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필자는 이 잡지를 중심으로 지난 2월까지 10여년 동안 헝가리·스페인·네덜란드·오스트리아·리투아니아 등 에스페란토 도서관에서 산재해 있는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잡지 <문학세계>(Literatura Mondo)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과 함께 두권의 책(<루쉰문선>, <루쉰소설집>(Noveloj de Lusin)), 네개의 정기간행물(<원동사자>, <동방호성>(東方呼聲·Voĉoj el Oriento), <중국보도>(中國報導·Heroldo de Ĉinio), <문학세계>)에서 모두 40편에 달하는 작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 거의가 1938~40년 중국의 홍콩, 청두, 중경에서 발간된 것들이다. 이것은 전부 에스페란토로 되어 있고, 원작시 3편, 번역시 14편, 원작소설 2편, 번역소설 12편, 번역희곡 4편 그리고 기사 5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간된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에스페란토 문학잡지인 <문학세계> 1934년 11월호에 김동인의 ‘걸인’을 번역해 실은 점이다. 이 밖에 직접 구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시대 가난에 시달리는 한국 농촌을 다룬 유치진의 희곡 ‘소’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해 중국에서 단행본을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중국 청두에서 1940년 발간된 〈Voĉoj el
Oriento〉(위)와 중국 중경에서 1940년에 발간된 〈Herold de Ĉinio〉에 안우생의 작품이 실려있다.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문학장르로 구성된 그의 작품의 주된 내용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전쟁의 참혹성을 알리고, 조국을 위해 분연히 전장으로 나가며 병사들이 영웅적으로 적을 무찌르는 것 등이다. 안우생은 해외 일선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직접 전개함과 동시에 민족간 상호 이해와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를 통한 문학작품 활동으로 애국정신과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그의 작품에는 항일로 불타오른 중일전쟁 전기의 중국 문예사조가 잘 드러나 있다. 원작시 ‘어머니의 땅’(Tero patrina)에는 “화약 냄새로 뒤덮인 이 시대에 어머니의 뜻에 맞는 새 시대를 찬미할 자손들이 기꺼이 자신을 바칠 것이다”라고 읊고 있다. ‘유격대원’(Geriloj)에는 “성스러운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유격대원들은 적의 세력을 박멸하고, 형제들에게 다시 찾아줄 평화를 위해 장렬하게 피를 흘린다”라고 적고 있다. ‘평화의 비둘기’(Paca kolombo)는 제국주의를 반대해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항일운동에 앞장선 일본 여성 하세가와 데루에게 바치는 시이다. 원작 단편소설 ‘숙모와 사촌들’(Onklino kaj gekuzoj)은 고부간 갈등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미망인 숙모를 주제로 하고, ‘쉬운 내기’(Facila veto)는 미신타파를 다루고 있다.

특히 번역시 ‘전사의 유언’(Testamento de batalanto)의 마지막 구절인 “슬픈지고, 밤 유령들을 겁먹게 하고, 찰나의 영광을 누린 후,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꺼져버린, 성냥개비처럼 나는 잊혀져 폐기될 거야”라는 말은 애국열사들을 곧잘 잊고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구로 다가온다. 루쉰의 소설 세편을 에스페란토로 뛰어나게 번역한 사람으로 알려진 안우생의 문학작품 수가 적어 그동안 몹시 아쉬웠다.

이번 발굴을 계기로 에스페란토 번역과 문학에 대한 그의 탁월성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애국문학가로서의 그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민족 독립운동과 에스페란토를 결부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에스페란토 문학의 거인

한국 근대 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김억은 “에스페란토는 문학적 묘사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1920년대 열성적으로 에스페란토를 보급하고 한국 단편소설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해 외국에 널리 소개하기도 했다.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정사섭은 자신의 에스페란토 원작시 105편을 모아 시집 <자유시인>(La Liberpoeto)을 발간했다. 이들 못지않게, 짧은 기간에 활동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 미뤄 짐작건대 안우생은 에스페란토 문학의 거인으로 평가받는 데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1940년 이후 작고 때까지의 작품을 발굴해 그의 문학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하는 일이다.


세계 공통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이다. 그가 태어난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사회에선 그 민족어를 사용해 발전시키고, 말이 서로 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쓰자고 주장한다. 현재 120여개 나라에 사용자가 산재해 있고,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기점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억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주요 도시에 그 지부가 조직돼 있고, 단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04호 2004년 4월 15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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