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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멘호프 전기-2
LEE Jungkee  (Homepage) 2011-01-31 16:53:00, Hit : 1,350, Rec. : 143

1873년 8월, 라자로 자멘호프는 비얄리스톡 김나지움의 4학년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였지만, 4개월후 가족은 바르샤바로 떠나게 된다. 자멘호프의 아버지는 바르샤바대학에서 시험을 보아, 1875년 9월에 수의학교에서,1877년에는 김나지움의 한 형태인 직업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바르샤바의 김나지움에서 가르치는 세명의 유태인 교사중 한사람이 되었다.

나중에 그는 여자 김나지움에서도 독일어를 가르쳤으며, 첫번째 남자학교인 예비 김나지움(비정규 김나지움)에서는 히브리 종교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1881년 그의 헌신적 강의로 3등급의 성(聖) Stanislao 훈장을 받았다. 가족의 수입은 늘었으나, 바르샤바의 물가는 비얄리스톡보다 더 비싸, 그 수입을 더 많은 가족들이 나누어 쓰야만 했다. 비얄리스톡에서 온 다섯 아이들, 바르샤바에서 낳은 세 아이들, 노블리삐에 28번 거리에 있은 자멘호프 집에는 모두 10명이 살았다. 1883년 자멘호프의 아버지는 바르샤바 검열 위원회의 독일어 잡지 검열관으로 근무하였으며, 나중에는 히브리어와 이디시어 출판물도 검열하였다. 바르샤바에서 라자로 자멘호프는 제 2 남성 김나지움에 들어갔으나, 그는 바로 학교에 다니지 않고 몇달을 집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였다. 이 언어들은 비얄리스톡 김나지움에서는 배울수 없었으나 바르샤바 김나지움에서는 개설이 되어 있었다. 그의 4학년 수업은 1874년 8월에 다시 시작되었다.

젊은 자멘호프는 공부만 한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때 부터 그는 자신의 국민에 대하여, 국민들간의 관계, 국민들간의 언어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라자로의 언어에 대한 연구에 대하여 불만이었다. 라자로의 동생인 Lev (이디쉬어로 Lejb, 에스페란토로 Leono)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르코 자멘호프가 자기 아들의 일에 대해 바르샤바 김나지움의 한 교장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교장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들의 언어 연구는 고칠수없는 확실한 초기 정신병의 증상으로  아들을 잃을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멘호프가 대학을 마칠때 까지 그 언어안을 발표하지 말것을 약속토록했다.

1879년 5, 6월 치루어진 시험에서 라자로는 2개의 '최우수', 3개의 '우수' 점수를 받았으며,
6월 15일 고등학교 졸업장과 선행과 근면성으로 은메달을 받았으며, 과학 점수는 매우 우수하였다. 1879년 8월 그는 모스코바 제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멘호프와 함께 안톤 체홉도 의학을 공부했지만, 그들이 수업 시간외에 만날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당시 유태학생과 기독교 학생간의 교류는 빈번하지 못했다. 러시아 거주인의 단지 4%만이 유태인이었으나, 1881년 김나지움에서의 유태인 수는 12.2%로, 대학에서는 8,8%로 증가했다. 특히 많은 유태인들이 의학과 법학을 배웠다. 자멘호프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러시아 유태 지식인의 중심은 러시아의 수도인 페테르부르그였다. 그곳에 사는 유태인들은 대부분 종교적 관습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자녀들에게는 러시아어 교육을 시켰다. 페테르부르그에는 '러시아 유태인(Russjij Jevrej)'과 '새벽(Razsvet)' 두개의 유태 러시아어 주간 신문과 월간지 '일출(Voshxod)'이 있었다. 그 세 잡지는 보수적인 유대관습과 종교적인 유대 관습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그 양자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외에,페테르부르그에서는 '수호자 (Hamelic)라는 히브리어 잡지가 있었다. 모스코바에도 많은 젊은 유태 지식인들이 살았다.
모스코바에서 자멘호프는 자신의 저술 '신 유태어의 문법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L.Gamzefon 이라는 가명의 이 원고는 100년동안 발표되고 있지 않다가 1982년 에스페란토 재단( Fondumo Esperanto)에서 발간되었다.

이디쉬어에 대한 이론적 작업 외에 자멘호프는 모스코바에서 유태인의 운명에 대한 실질적인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알프레드 미쇼에게 쓴 편지에서 대학생 시절에 그는 "열렬한 시온주의자' 였으며, "초창기 시온주의자 조직을 성공적으로 결성했다'고 쓰고 있어나, 더 자세히는 1907년 런던에서 발행되는 잡지 'Jewish Chronicle'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나는 늘 나의 나라의 사회적 생존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청년시절에 나는 대단한 정치적 시온주의자였습니다. 그런 생각은 Herzl 이 나오기 오래전이었으며, 유태국가에 대한 생각이 히브리인들 사이에 대중화 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 이미 1881년 모스코바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나와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중 15명과 모임을 갖고 내가 구상한 계획을 제안한바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 세계에 사람이 살고있지 않는 곳에 히브리 거주지를 만들면, 그곳이 독립적인 유태국가의 시작이요 중심이 될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동료들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했고,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러시아 안에서 유태인의 첫번째 정치적 조직을 결성했던 것입니다."

1881년 3월 1일, 테러리스트 조직인 '인민의 바램/자유' (Narodnaja Volja) 출신의 Ignatij Grinevickij 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라 2세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나라의 상황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도시에서 유태인에 대한 학살이 일어났다.  '인민의 바램/자유' (Narodnaja Volja)의 이념가들은 혁명 전쟁의 한 형태로 그 학살을 지지했다. 비록 학살 기간동안 단지 몇몇 유태인들이 살해되었지만(경찰과 군은 수십명의 학살행위자들을 죽였다), 그 사건들은 러시아 사회에서 유태인의 통합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유태 지식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멘호프는 2학년의 수업을 마친후 바르샤바로 돌아와 1881년 8월 바르샤바대학 3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유태 잡지에서는 러시아 유태인의 미래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잡지 '새벽(Razsvet)'에 사람들은 미국, 스페인,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유태인이 이주할것을 제의하는 글을 자주 썼다; 그러나 '러시아 유태인(Russjij Jevrej)'과 '일출(Voshxod)'은 그런 주장을 비판하면서 러시아 안에서 러시아 유태인의 문제를 해결할것을 주장하였다.
22살의 자멘호프는 잡지 '새벽(Razsvet)'의 이주 주장에 대한 토론에 끼어들었다. 1882년 1월과 2월에 2,3,4,5호에 Gamzefon 이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무엇을 할것인가?' 라는 제목의 폭넓은 그의 글이 실렸다. 자멘호프는 유태인들의 대규모 이주를 주장하였고 이주 목적지로 팔레스타인과 미국을 지목했다. 그는 크리스챤, 터키인, 그리고 '광폭한 강도같은 소수민족들이 유태인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을것이며, 팔레스타인 그리고 그 주변에 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을 비웃는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사람이 많이 살지않는 미국을 선택하기를 제안했다. 그곳으로 세계의 유태인들이 모여 그곳을  미국의 한 구성원으로 유태인 주로 선언하자는 의견이었다.
미국주의자와 팔레스타인 주의자간의 논쟁속에서 자멘호프는 '분열을 피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공동의 깃발아래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끝 부분에서 감동의 호소를 하게된다;

"우리 앞에는 열려진 길과 뚜렸하고 확실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에 집단부락을 만들어 나라를 세우고 옛 조국에 가족과 가족을, 집단과 집단을 백성으로 모읍시다. <...> 아랍에게 두배, 세배의 값을 지불하면, 그들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땅을 팔것입니다; 금 열쇠로서 당신은 모든 터키 문서고를 쉽게 열수 있을것입니다.  <...> 우리는 꿀벌처럼 우리의 나라로 한방울 한방울, 꽃에서, 꽃잎에서 다양한 힘을 모을수 있을것입니다. 화합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조금씩 조국에 생명력과 영광을 되돌려 줄수 있을것입니다. 그곳에 살기 시작한 모든 부자들은 백성들을 위해 큰 봉사를 하게 될것이고, 그곳에 세워진 모든 학교는 가장 소중한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걸어나갈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힘을 합칩시다. 우리 모두의 것이 될수 있는 유일한 깃발아래 일어섭시다! 이 깃발위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집으로!' 6)

자멘호프는 팔레스타인에 농경지를 만드는것을 목표로하는 운동인 '시온에 사랑을' (H^ibata-Cion)에 적극적이었다. '시온에 사랑을' (H^ibata-Cion) 의 회원을 '시온을 사랑하는 사람들'(H^ovevej-Cion)이라 하며, 나중에 그 운동을 'H^ovevej-Cion' 이라 불렀다.
1882년 2월, 자멘호프는 바르샤바에 학생 단체인 'S^eerit-israel' 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이끌어 갔다. 그는 규정을 만들고, 그것을 인쇄하여 배포하고, 회합을 준비하고, 콘서트와 무도회를 준비하고, 참여자를 모집하고 유태인을 위한 도서실을 세웠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집단 거주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로 부터 모금도 하여, 그 돈을 독일로 보냈다.

1883년 8월 'Sxeerit-israel'와 'Hibata-Cion' 총협회는 바르샤바에서 통합되었으며, 23살의 자멘호프는 수도 협회의 실행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 직위의 자격으로 그는 Bilu (H^ibata-Cion'의 청년 사회주의 단체로 그 회원들은 팔레스타인에 가서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의 활동가들과 접촉을 갖게 되었다. 그 자신이 팔레스타인으로 가고싶었으나, 우선 대학을 마치기로 했다.
점점 그의 시오니즘 활동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는 1차 'H^ibata-Cion' 회의(Kattowitz, 1884)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년말 의사가 된후에는 유태 사회 운동에 소극적으로 참여했다.  1885년 2월, 자멘호프박사는 그의 결혼한 여동생 Fejgla (Fania) Pikover 가 살고있는슈발키아지역의 베이세예(리트비아어로 Veisiejai, 폴란드어로 Wiejsieje) 소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첫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4개월의 진료을 통해 일반의가 그에게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 젊은 의사는 바르샤바로 돌아와 자신의 전공과목으로 안과를 선택하게 된다. 그는 6개월 동안 바르샤바 유태 병원, 안과에서 일하였다. 1885년 말, 자멘호프는 주정부 도시인 플롴에 가서 그곳에서 안과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전공 지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1886년 5월 비엔나로 가서 그곳의 비엔나 종합 병원 안과에서 전문의 공부를 하게된다.
그는 Muranowska 40번지로 가족들이 이사해 살고있는 바르샤바로 되돌아 왔다. 이 집에 그는 안과 진료소를 열게된다.  그사이 그는 클라라 질베르니크(Klara Zilbernik)와 알게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Sender Lejbovicx Zilbernik는 랍비의 아들로 유태 종교 고등학교인 'jesxiva'를 마쳤으나, 속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카우누스에 비누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2차 길드의 상인으로서 그는 경제적으로 좋은 상태였다. 질베르니크씨는 네 아들과 다섯 딸이 있었다. 큰딸이 1862년 10월 14일 태어났으며, 이디쉬어 이름으로 Kejla (러시아어와 폴란드어 이름이 Klara) 였다.
1887년 3월 18일 자멘호프와 클라라는 약혼을 하였고, 8월9일에 바르샤바에서 결혼하였다. 신혼 부부는 Przejazd거리 9번 집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질베르니크의 지참금(만 루블)은 그 가족들이 몇년간 살아가는데는 충분했으며, 가장으로서 자멘호프는 그 기간동안 개업을 하여 수입을 만들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장인과의 사전 동의하에 자멘호프는 그 지참금의 반을 자신이 만든 국제어의 발간과 홍보에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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